보스니아 내전에 관한 영화를 본 것이 이 작품을 포함하면 올해만 네편째(젊은 여자,그르바비차, 나파카 인 걸로 기억한다. 불과 10여년이 지났을 뿐인 가슴아픈 현대사이긴 하지만 내가 그 아픔을 느낄 수 있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아니라서, 관계가 없어서라는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일 것이다. 즉 실감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원래 남의 죽음보다 자신의 작은 상처를 더 아프게 느끼는 것이 사람이긴 하지만..
또 여전히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으로 분리된 보스니아 내전에 대한 것은 잘 모르고 있다. 인종갈등, 역사적인 배경, 종교등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일어났겟지만 결국은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인한 비극인 것이다.
사라예보는 여러인종과 종교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잘 어울리면서 살아왔다는 말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 영화는 실화에 기초한 이야기를 가공해서 만들어진 영화이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리기 얼마전 블라도와 슬라브코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사격대표로 뽑히게 된다. 이제 곧 스페인으로 떠나려고 준비를 할 즈음, 사라예보에는 세르비아와 보스니아간의 내전이 발생하게 된다. 슬라브코는 징집되어 세르비아 군의 사격교관을. 무슬림인 블라도는 사라예보에 남아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게 된다.
여전히 서로를 각별히 생각하지만, 내전을 둘러싼 전쟁의 광기에 두 사람은 조금씩 침식당하기 시작한다. 친우 미샤의 딸 레일라가 저격당해서 죽게 되면서 블라도는 적극적으로 내전에 참여하게 된다. 세르비아 군의 무차별적인 무슬림을 살해하는 저격범을 없애야만 한다.
블라도가 알아낸 저격수는 예상한 것 처럼 둘도 없는 친구, 슬라브코 였다. 서로에게 총을 겨누지만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두 사람. 블라도는 밤에 몰래 슬라브코를 찾아가 이 지옥에서 떠나라고 말하고 둘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듯하다.
그러나 다음날 슬라브코는 여전히 군복을 입은채로 저격을 행하러 나가고, 블라도는 슬라브코를 저격하게 된다.
여전히 전쟁의 포화는 멈출줄 모르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가게 마련이다. 자신들이 할 수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진짜로 강한 것은 총도, 탱크도 아닌 인간의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인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비롯되어지는 죄악들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지는 수 많은 무덤만을 양산하게 된다. 멀리 보이는 도시의 모습 은 수 많은 죽음을 담보로 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느쪽이 나쁘다는 것을 판단할수도 없고 판단하기도 싫지만 왜 전쟁을 하는 걸까? 남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면서까지 얻으려는 무언가의 가치는 무얼까? 물론 생명이상의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의 모습들은 그 어떤 정당성도 부여할 수 가 없다. 이데올로기, 종교를 막론하고 그것을 빌미로 목숨을 경시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왜 아이들이 죽어야 하고, 절친한 두 친구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고, 총구를 겨눠야만 했을까?
지금은 없어져 분리가 된 '유고슬라비아 연방', 그들은 그 비극을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까? 가족이 죽고 친우를 죽여야만 했던 현실을 초래한 것은 과연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