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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헤어쪼크, 너무나 유명한 이름인 것을 알지만, 정작 아는 것도 없고 그의 작품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저 독일의 유명한 감독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솔직히 아직 활동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헤어쪼크가 다루는 베트남 이야기. 독일인이 다루는 월남전의 시각이 궁금했다. 이 영화는 독일계 미국인인 디터 댕글러가 베트남에 조종사로 참전하고, 비행기의 추락 후 포로가 되었다 탈출을 하는 것을 기본 내용으로 하는데, 헤어쪼크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면서 가지는 어떤 근거 없는 기대가 영화의 이해에는 개인적으론 방해가 되었지만 나름대로 감상을 해보았다
Rescue Dawn
Director
Werner Herzog
Cast
Christian Bale .... Dieter Dengler
Steve Zahn .... Duane Martin
Jeremy Davies .... Gene DeBruin
디터라는 인물은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다. 어릴적 2차대전의 공습을 독일에서 겪고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었던 소년, 미국으로 건너와 미군의 비행기 조종사가 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게다가 맥가이버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용한 여러가지 기술, 낙천적 성격에 굴하지 않는 의지를 겸비하고 있다.
디터는 첫 임무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전장의 한가운데에 떨어지고 적의 포로가 된다. 그는 미국의 부당성을 인정하는 서류에 사인을 하는 것을 거부하고 깊은 정글의 소규모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금방이라도 구출 될것이라는 믿음과 미국이 그에게 베풀어준 것에 등을 돌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의 사인거부였지만 그가 맞닥뜨리는 것은 2년이 넘게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미군 포로들의 무기력한 모습뿐이다. 두명의 미군과 비행기 추락으로 베트콩에게 잡힌 일단의 현지인들. 정글 자체가 감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오지의 수용소에서 모두가 포기한 탈출을 꿈꾸며 그것을 실행하고, 정글의 위험과 추적을 물리치고 드디어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지금까지 나열한 줄거리에서만 보자면, 역경을 극복한 전쟁영웅의 귀환을 다룬 인간승리 물에 불과하다. 헤어쪼크가 연출해 내는 흥미진진한 전개와 독특한 베일의 인물설정 연기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헤어쪼크라면 무언가를 더 표현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아쉬움을 자아낸다. 그래서 조금만 더 생각 해보기로 했다.
먼저 전쟁, 특히 베트남전을 다루는 영화들을 영웅액션물 또는 반전물, 이렇게 대충 두가지로 구분한다고 가정하면, 이 영화는 어디에 속할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분류에의 고민이었다.
액션물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수용소를 탈출하는 영웅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영웅물인데 그러면 이 영화는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일반적으로 람보류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액션물은 절대선과 악을 구분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영화에서 전쟁의 부당성과 반전을 논하는 것은 조금은 무리이다(람보1 같은 경우는 생각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액션에서 보여주는 오락적인 요소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한 면에서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정확히는 다른 것이, 이 영화는 전쟁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전쟁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참전을 하긴 했지만 전쟁의 목적과 이데올로기는 언급조차 않는다. 단지 생존과 자유를 원한다. 베트콩 간부가 내미는 서류에 사인을 하지 않은 이유는 엄밀하 말하면 의무감일 뿐이다. 또 보통 전쟁에 참전하는 군인들이 투철한 애국심과 사상으로 무장한 이념의 전사가 아니듯이, 보통의 사람들처럼 현실을 거부할 수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다루고 있다. 더우기 이 베트남전은 남북전쟁도 아니며 독립전쟁도 아니니...
이러한 모습에서 전쟁은 무익한 것이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무관심은 오히려 더한 비난의 의미로 파악할 수도 있다. 두개의 커다란 전쟁을 겪은 독일계 미국인은 단지 하늘을 날고 싶었을 뿐이지만 전쟁에 휩쓸려 포로가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전쟁을 무의미한 것이며 개인적으로른 무관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쟁에 대해 무관심한 대신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물론 베트남에 대한 미개하고 일방적인 어떤 시각이 불쾌하긴 하지만, 일단 그것을 하나의 장치로 인식한다면. 수용소에서 겪는 인물들의 모습을 살펴 볼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서에서 드러나는 어떤 모습을 차용한 듯한 설정과 구성을 통해, 여기서 부터 디터는 선각자 또는 지저스의 또 다른 모습을 인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좀 억지이긴 하지만 진의 등짝에 새겨진 Quo Vadis(Where are you going?)이라는 문구에서 그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주 작은 수용소에 간수와 포로로 구분되는 상황은 이스라엘이란 작은 나라에서 로마의 지배아래 있는 위정자와 피지배층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진과 듀앤이라는 캐릭터는 예수를 따르는 여러 제자들의 모습을 따르고 있으며 디터는 예수를 연상시키긴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만약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움직이는 사람의 아들이 보이는 선각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이 영화에 종교적인 의미가 크게 있다기 보다는 그런 연상을 통하여 극한의 상황아래 움직이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스스로 비추어 볼 수 있게 해준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엑스페리멘트 Das Experiment 2001에서 알게 된)에서 처럼 역할에 따라서 인간의 내외적 변화가 이루어 지는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수용소를 감시하는 작달막한 동양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시 자그만 그렇지만 절대적인 권위 속에 빠져 있으며, 오랜 수용소 생활에 지친 포로들 역시 비쩍 마른 가운데 허물어져 가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지켜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듀안과 진이다. 진은 Quo Vadis를 등에 짊어진 채, 디터가 구세주임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를 위협한다. 여기서 믿고 기다리면 구원의 약속이 실현될 것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진 역시 디터가 행하는 이로움의 혜택은 충분히 챙긴다. 진은 베드로의 모습을 한 유다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다양한 모습이면서 이중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듀안은 디터를 믿고 따르는 믿음의 인물로,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온전한 모습은 아니다. 듀안과 진에게서 베드로와 유다의 모습이 섞여서 또 다는 인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신의 아들은 모시는 열 세 사도의 인간적인 모습이 이들에게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Quo Vadis를 외친 사람이 누군지를 기억한다면, 상황에 따른 선택이 마구 섞여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디터 또한 예수가 아니다. 그는 이적을 행할 수도 없고, 신탁은 커녕 회의하는 인간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진의 배신과 광기에 물들어가는 모습, 듀안의 죽음 속에서 인간적인 번민을 거듭하는 디터의 모습을 통하여 인간이란 무었일까? 라는 고민을 보여주는 영화임을 알수 있다. 기독교적 역사에 무지한 관계로 잘못 된 이해일 수도 있지만 별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신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절실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구절절 말만 늘여놓았는데 결론은 다음말로 대신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항모로 돌아가서 전우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스테이크를 먹겠다는 믿음과 가려우면 긁어라는 말. 욕구와 자유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은 하찮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존엄한 존재라고 주장할 수 없을런지도...
헤어쪼크의 새로운 영화는 기대이상으로 재미있었으며(그다운 영화라고 말하고 싶지만 잘 모르니까 쓸수 없는 말이다), 실화를 옮긴 영화이긴 하지만 사실 그 자체에 침잠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자신이 보여주려고 하는 바를 제대로 풀어내었으며 베트남전과 실화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여러가지 비유적 설정과 은유로 부드럽게 끌어낸다. 쩝 또 적다보니 논지가 애매해지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