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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8
이 영화가 걸작이라고 불리우는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뭐 연출력을 보여준 거라고 한다)
굉장히 짜증나는 진행 구조를 가지고 있다.
냉정하고 머리회전이 빠른 곤도가 그런 바보 같은 결정을 하는 이유를 일단 이해못하겠다.
전반부의 유괴와 관련하여 아이를 구하기까지의 스토리와 후반부 범인을 잡기 위한 경찰의 노력이라는 두부분으로 영화는 극명하게 나누어진다. 혼자 이렇게 상상도 했었다. 이건 곤도의 자작극일거야. 스토리도 그렇게 흘러가잖아. 곤도와 다케우치가 만나는 장면에서는 확신까지 했었는데 아니었다. 다케우치가 곤도의 집을 바라보면서 생기게 된 이유없는 증오가 원인이었으며 곤도는 끝까지 착한 역으로만 나온다. 젠장. 이건 아니잖아. 너무 뻔해서 추리하는 재미가 없잖아. 뭐 곤도가 범인이었다고 해도 아마 똑 같은 말은 했겠지만.
다케우치 역을 맡은 배우의 젊은 시절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담포포와 Go 그리고 일련의 일본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들거나 노인의 역할이었는데 젊은 그의 모습도 재미있었다.
아키라의 연출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훌륭한 영화일런지도 모르겟다.
하지만 이건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 연결될 뿐 전혀 다른 영화이다.
전반부가 곤도가 겪는 자신의 이익과 양심이라는 부분에 갈등을 맞춘 데 비해서
후반부는 그 심리적인 갈등 보다는 오히려 현대적 수사물인 요즘의 CSI에 가깝게 보인다.
중반부에 이미 범인을 노출시킨 것은 오히려 진짜 범인일까? 하는 의문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반부의 그 탁월했던 심리 연출에 비해 후반부는 심리보다는 사회적인 여론과 개인의 이익 또는 증오의 대결구도로 이끌어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결국 승리한 건 증오, 여론, 이익, 양심 그 어떤 것도 승리하지 못하는결과를 보이고 있다.
천국과 지옥 high and low로 상징되어지는 빈부격차에서의 박탈감은 증오로 이어지고 그것의 실행과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곤도와 다케우치의 면회장면에서의 대화는 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다케우치가 사형을 당한 진정한 이유는 그의 죄때문일까? 그의 가난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사회의 결정인가? 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지옥에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곤도도 초반부 부인에게 하는 말로 봐서는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부의 중요성을 알면 상실이 될때는 지옥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다케우치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천국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음으로써 결국은 좋은신을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바램을 성취해나간다. 그의 선택이 그를 진짜 천국으로 이끈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다케우치는 그런 천국을 파괴하고 행복한 사람의 파국을 보기를 원한다. 그는 선택을 잘 못 함으로써 자신만의 지옥이 아니라 진정한 지옥으로 가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콘도가 행복한지는 모르겠다.다케우치가 불행한지도 모르겠다. 결국 천국과 지옥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선택에 있어서 만족을 얼마나 하는 것, 힘들다면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서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