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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수는 나의 것 (復讐するは我にあり , 1979) Fukusho Suruwa Ware Ni Ari
    Cinema/Japan 2007. 3. 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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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22


    Imamura Shohei
    금기시 되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영화.

    에노키즈의 살인행각을 따라가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의 어린 시절 부터 유골이 뿌려지기까지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계속 보면서 에노키즈는 왜 이런 살인을 저지르고 일말의 반성도 없는 이유에 대해서 찾아보려고 했지만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드는 생각은 그것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전개되어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가 눈여겨 본 인물상은 그 중에 당연히 에노키즈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과 하츠마츠의 모녀이다.
    에노키즈의 살인은 어떤 동기도 없으며 그 자신도 인정하듯이 죄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유없는 것이다.그러면서도 그는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으며 당당하기만 하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카톨릭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지만 핍박받는 종교인으로서 그들이 애정을 가지는 대상은 허울뿐인 하느님과 아버지는 며느리를,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이다. 며느리 카즈코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 이해가 잘 가지는 않지만 그들의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원래의 사랑에 대한 실망과 반발에 기인한 대체적인 느낌을 가진다. 어머니는 더우기 카즈코와 남편을 보면서 소외감과 동시에 애정의 대상인 아들조차 이미 악마일 뿐이다. 이 부분은 아마 노인 문제에 대한 잠시의 언급일 수도 있겠다.

    하츠마츠 모녀는 어찌 보면 더욱 복잡할 수도 있겠다. 구석진 작은 여관의 포주인 딸과 살인죄로 15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정사를 훔쳐보는 관음증과 경정의 도박만이 낙인 엄마. 더우기 딸은 어떤 난봉꾼의 첩으로서 살아가고 있으며, 엄마는 그 난봉꾼과의 화합만을 바라는 묘한 캐릭터이다. 그들은 그가 살인자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나름대로 그를 끌어안는다. 에노키츠는 그들에게서 자신의 가족들에게서 느끼지 못한 정을 느끼게 되면서 혼란스러워 지고 이유없이 그들을 살인하고 그들의 재산을 처분한다. 하츠마츠 모녀는 사랑을 전혀 받지도 못하고 해본 적도 없는 듯이 보인다. 단지 그들은 남성우월적인 사회의 희생자처럼도 보인다. 거기에 전혀 반항하지 못하는 엄마, 그리고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까지 당하는 딸.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캐릭터들이다. 이 모녀에게서 한가지 더 말하고 싶은것은 할머니의 살인이다. 그녕의 살인은 자신의 표현으로는 죽이고 싶어서 죽였고 후련했다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 에노키츠에게 물어본다. 후련했냐고? 속이 풀렸냐고?

    에노키츠의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보여지는 것은 아버지의 배가 캐톨릭의 종교탄압을 통하여 군수물자로 징발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이다. 그는 몽둥이를 들고 그 군국주의의 상징처럼 보이는 하얀제복의 일본군 장교를 덮치지만 아버지는 보기에 비굴하기만 하다. 이 때부터 그의 이유없는 뻔뻔한 당당함은 시작되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반항은 끊임없이 계속되며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경멸 그리고 느껴지지 않는 알 수 없는 애정인 것 같다. 그는 도피 생활전에는 그의 소년원 감옥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 처럼도 보여진다.

    에노키츠는 아버지와 아내의 그 묘한 감정을 이미 눈치채고 있으며 오히려 그것을 조장까지 한다. 그에게 있어 아내와 자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그에게 존재하는 것은 어머니도 아니며 아버지에 대한 기대와 실망, 증오와 애정의 복합체인 이해하기 힘든 느낌뿐이다. 그는 그것을 다른 곳에 풀어버리려고 하지만 하츠마츠 할매의 대답에 전혀 후련하지 않고 속도 풀리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하츠마츠에서 2명을 죽인 이야기는 여러번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으며 도저히 알수가 없다고 말하는 형사의 대답에 자신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솔직히 난 대화가 가장 이해가 안 갔다. 내 보기에 다른 모든 살인은 그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는 무차별 살인일뿐이었다. 하지만 하츠마츠 모녀는 그에게 진정한 가족애를 느끼게 해준 사람이다. 할매는 그에게 쓴소리를 막 하지만 아마도 그것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가 없는 애정에 불만을 느낀 그에게는 그것이 진정한 모성으로서 느껴지지 않았을까? 아기를 가지고 싶어하는 딸은 그에게 아내에게서 느끼지 못한 사랑을 느끼고 뱃속에 있을 것 같은 아기에 대한 부정조차도 그에게 주었을 것 같다. 그렇다 이것은 그에게 용납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애정넘치는 조합에는 아버지가 없다. 바로 그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다. 뒤에 표현되긴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살의는 그가 유일하게 가진 진짜 살의이다. 그래서 하츠마츠에서 그는 3인을 죽였다고 표현한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줄거리에 대한 짐작과 유추는 대충 이정도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많은 부분이 빠졌고 내가 놓친 부분도 있겠지만.

    위에서 내러티브와 관계된 나의 의문과 생각, 추측등을 주절거렸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다는 아니다.
    내가 가장 먼저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금기의 총집합이다.(물론 일본이라는 나라라 강조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먼저 근친상간의 표현, 그것도 시아버지와 며느리라는 어찌보면 전혀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가장 금기시 되어질 그 관계에 대한 파괴이다. 물론 직접적인 것은 나오지 않지만 그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서로를 여하튼 사랑하고 있다.

    에노키츠의 트라우마일 제복장교의 천황폐하를 위하여 배를 바치겠다는 식의 표현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가장 강도 깊은 비난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천황을 그러한 상황에서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일본에서 있기 어려운 경우가 아닐까 생각된다.(물론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몇번씩 강조 되어지는 폐하를 위하여라는 그 반복의 표현은 결코 찬양이 아닌 비꼼임을 알수 있지 않을까?)

    일본 관부의 허술한 제도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기본이다. 연쇄 살인범이 이렇게 활개를 치고 계속 된 범행에 그들은 단지 수동적이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만 할 수 밖에 없는 그 멍청함은 영화 전체에 깔려 있어 언급조차 필요없다.

    하츠마츠 모녀와 난봉꾼을 통한 여성에 대한 착취와 남성위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무서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에노키츠는 죄의식 없는 살인광에 섹스홀릭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과 시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통하여 성에 무너져버린다. 모녀 역시 관음증을 통한 성의 만족과 종족번식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에노키츠의 어머니는 성을 상실한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성적인 문제와 살인으로 표현되어지는 폭령성이 전체적으로 도배되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통하여서도 에노키츠의 동기와 죄의식의 상실은 얼핏 짐작만이 가능할 뿐이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인간본성에 대한 의심과 혼란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각해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친구가 이마무라 쇼헤이는 천재인가? 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군국주의로 표현되어질 수 있는 제도에 대한 일관적인 비판을 언급한 적 또한 있다. 먼저 천재인가? 물어본다면 잘 모르겠다. 그에게서 천재성을 느낀 적은 없다. 이제 몇작품을 본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 수십년의 간극 속에서 지켜지는 큰 줄기들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 작품에서 조금씩 느껴진다. 시내가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듯이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여드러나는 것에서 친구가 말한 제도적인 비판을 이제는 느낀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은 일본에 대한 이마무라의 지극한 사랑에 의한 애증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 진정한 일본의 애국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그렇다고 나를 일본 빠돌이로 착각하지는 말도록). 말이 조금 옆으로 흘렀지만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그만의 일관성은 그를 천재로 보이게도 한다. 그러나 천재라기 보다는 인류학 입문에서 인형의 음모를 하나하나 심어가는 그 완벽추구와 철저함이 그에게서 느낀 것이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아마 이마무라 쇼헤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이해하라.

    이 영화의 마지막 몇 분은 나로 하여금 영상의 재생을 여러번 확인하게 만들었다. 그의 유골을 하나 하나 그리고 몽땅 던지는 화면에서의 프리즈 프레임(? 맞는지는 모르겠다)에서 나는 앞서 언급한 인류학입문의 수상가옥의 부유를 떠올렸다. 그 배는 어디로 갈지를 알수가 없고, 던져진 유골은 멈쳐버린다.
    난 솔직히 이 연상에서 친구가 말한 천재인가 하는 말에 순간 긍정해버렸다. 위의 두장면에서 나는 정처없이 부유하는 일본과 우리 인간의 본성을 떠 올려버렸고 슬퍼졌고 반성했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번뜩이는 재기의 천재가 아니라 꾸준하지만 엉뚱하고 본질을 추구하는 천재인 것 같기도 하다. 뭐 그가 천재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그의 영화는 나를 즐겁게 하고 사고를 넓히면서 이런 허접한 감상이라도 길게 적게끔 하는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변명, 혹시나 이글을 우연히라도 읽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이건 꼭 알았으면 한다. 내가 여기 블로그에 적는 글은 퇴고 거의 없음, 수정 거의 없음(틀린 사실은 고친다)임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러니까 글이 거칠고 논리가 떨어지며 논지가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대한 서글픈 내 부족함에 대한 변명을 이렇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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