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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의 혁명가 - 체 게바라 El Che 1997
    Cinema/Europe 2007. 11. 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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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 게바라를 기억하는 것은, 무지몽매에 기인한 몰이해를 동반하는 악세사리 또는 티셔 츠의 문양정도에 불과했으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였다는 것도 몰랐었다. 그 영화를 보기 전까지, 단순히 이 카리스마 있어보이 는 수염투성이의 베레모에 별 하나를 단 인물은 내게 티셔츠의 그림 이상은 아니었다. 남 미의 자유와 혁명의 상징적인 인물,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주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에야 예전 내 휴대전화의 장식물이었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지만 선후천적 게으름 으로 인하여 잊어버리고 있다 접하게 된 그의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그가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자유와 평등을 위한 세계를 위한 올곧은 삶에 관한 경의를 일단 표할 수 밖에는 없겠다. 그 사상과 노선에의 정당성과 동의의 여부를 떠나서 무한한 존경을 받을 만한 삶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 초라해 보이는 마지막을 안 타깝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
    El Che - Ernesto Guevara:
    Enquête sur un homme de légende
    사용자 삽입 이미지
    Director
    Narrator
    모리스 두고슨
    Maurice Dugowson
    피에르 칼퐁
    Pierre Kalfon
    Writer Agustin Pérez Pardella
    원작 피에르 칼퐁 저
    /체 에르네스토 게바라,세기의 전설/
    "Che, Ernesto Guevar,
    une legede du siecle"
    Pierre Kalfon
      이 다큐멘터리는 별이 새겨진 베레모를 쓴 남자,  천사처럼 아름다운 외모의 남자.  순수한 혁명의 상징으로 전설이 되어 사라진 남자에 관한 것이라며 내용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보아 온 그의 모습은 68년 5월 프랑스 혁명(총봉기) wikipedia당시의 바리케 이드에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모습은 39세에 사망한 체 게바라를 영원한 젊 음을 간직한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그림이라고 한다.

    CHE is a familiary interjection in the argentine language spoken in the Rio de la plata.
      The Cubans gave Ernesto Guevara this nickname
      체(Che)는 아르헨티나 리우데라플라타 지방 언어의 감탄사이다 쿠바인들은 에르네스토 게바라를 이 별칭으로 불렀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알 수 있었던 체 게바라의 여행을 그 자신은
    'This aimless wandering has changed my life more than l imagined.'
    “이 목적없는 방황은 생각보다 내 인생을 더 많이 바꾸었다”
    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여행에서 체 게바라는 자신이 아르헨티나 인이 아니라 남미인임을 자각했다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학업을 마치고 의사가 된 Che Guevara는 다시 여행을 떠나는데 당시 남미는 혼란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 속에 만연해 있는 가난과 질병 사회폭력을 목격한후..
     'l have sworn not to rest until these tentacles of capitalism are crushed.'
    '나는 자본주의의 촉수가 끊어질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
    라고 다짐한다.

      남미를 돌아다니던 게바라는 필연적으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10년간의 관계는 시작되고 20세기 혁명 역사의 특별한 장을 이끌어 내고 혁명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과 권력의 유혹은 두 사람의 운명을 극적으로 이끌어간다.

      쿠바에서의 혁명과 활동을 통하여 게바라는 조금의 특권도 원치 않으며 자유와 평등,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사회주의를 통한 평등과 모든 이의 자유를 원하는 그의 생각은 공산주의 국가들과 카스트로와의 결별을 예정하고 있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1965년 2월 알제리에서 행해진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은 착취하는 제국주의자들과 같다. 이들은 해방을 바라는 나라들의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라는 요지의 연설이후 전세계에 폭탄과 같은 충격을 안겨주면서 그의 행로를 완전히 바꾸게 된다.

      그가 원했던 것은 실제로 이루어지기 힘든 유토피아적 이상론이었던 것이라 여겨지게 된다. 그리고 1965년 3월 쿠바로 돌아 온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장시간의 대화를 한 후 공식석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알제리에서의 도발적인 연설 이후 정치 전선에서 무너지고 경제 부문에서도 실패한 체는 국제공산주의에 충실한 길을 가고자 한다

      아프라카의 콩고에서 해방에 무력함을 절감한 게바라는 쿠바로 돌아왔다 다시 혁명을 준비하던 볼리비아로 떠나 게릴라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부족한 지원과 환경으로 인해 사정은 여의치 않게 흘러가고 1967년 10월 8일 게바라는 체포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당하는데 처형을 당했는지, 부상으로 인한 죽음인지는 모호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제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시신을 옮기는 과정을 공개하고 시신을 전시했고 묻었다고 하는 볼리비아 발레그란데가 그가 머물럿던 마지막 장소였다고 한다.

      이 다큐를 보기 전 그가 어떤 죽음을 맞았는지는 몰랐지만, 결코 편안한 죽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는 하고 있었지만 이런 것을 상상하지는 못했다. 마치 엄청난 테러리스트의 죽음을 기뻐하고 그것을 기념하는 듯한 장면에서 무언가 기이하고 묘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빈라덴을 추적하고 후세인의 죽음을 보도하는 듯한 게바라의 주검을 공개하는 장면에서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 더하여 느끼게 되는 묘한 공통점은 둘 다 미국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며, 이러한 일들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지금은 악세사리의 장식으로 더 알려져 있는 듯도 한 체 게바라의 삶은 드라마틱하고 존경할 만 한 것이지만, 또 그의 자유와 저항, 혁명의 아이콘으론 인식이 되기도 하지만...그의 말로는 비참한 반군게릴라로써 맞이했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반면에 이러한 죽음이 가장 게바라 다운 것일런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난는 이 다큐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완전히 신뢰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보여지는 부분에서 알수 있었던 것은 이상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 열정적인 삶을 존경하고 부러워 할 뿐이다. 나는 그의 이상을 잘 알지도 못하고 조금 아는 부분에서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이 영상물이 게바라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che 사인이 들어간 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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