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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7-14 우울한 청춘靑い春BLUE SPRING2001
    Cinema/Japan 2007. 3. 1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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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츠다 류헤이(松田龍平), 아라이 히로후미(新井浩文)
    ▷ 감 독 : 토요다 토시아키(豊田利晃)


    행복하면 손뼉을 쳐라.

    이 영화를 본 것은 마츠다 류헤이라는 배우를 마음에 들어하는 친구가 영화의 스타일이 나에게 맞을 것 같다고 추천해서 보게 되었다. 이전에 본 Gimmy Heaven에서 이 배우는 역의 비중이 적어서 그랬는지 별 특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도 관심있게 봤는데 솔직히 아주 뛰어난 점은 찾지를 못했다. 그렇지만 역에 맞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해냈다고는 생각한다. , 하지만 후반 10-20분 정도에서 보여주는 류헤이와 히로후미는 연기도 그렇고 캐릭터도 그렇고 힘이 넘친다.
    내가 오히려 관심있게 본 배우는 아오키 역을 연기한 아라이 히루후미다. "Go"에서도 쿠보즈카 요스케와의 역할 구도가 여기에서의 쿠죠와의 것과 얼핏 비슷하게 볼 수도 있지만 "Go"는 어디까지나 영화에서 주장하듯 쿠보즈카 요스케의 연애이야기를 빙자한 재일한국인의 청춘 방황 이야기여서 아라이의 존재도 그 비중도 크지는 않았다. 쿠보즈카 요스케만을 위한 영화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뭐. 여기서의 아라이는 진짜 딱이다.

    이 영화는 쿠죠와 아오키라는 두 시각의 차이가 영화의 결말을 향해 나아가면서 충돌하면서 생기는 파편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아사히 고등학교 25회 졸업식의 옥상에서 서열을 정하는 박수치기. 초반의 음악과 옥상의 장면에서 이미 나의 시선을 꽉 잡았다. "호오, 이거 초반부터 강렬한데!" 그러나 그 후 아오키의 대 변신까지의 과정은 솔직히 그리 강렬하지는 않았다. 초반의 강렬함이 전개에 조금은 방해가 된 듯한 느낌, 충격적일 수도 있는 화장실 살인 장면 조차 평범하게 느껴졌었다. 뭐 그렇다고 지루했다는 표현은 결코 아니다.

    쿠죠의 알 수 없는 자신만의 갈등(아오키의 말을 빌리자면 위에서 내려보는 듯한 시선을 하고 맘껏 권태로워한다 )그러나 쿠조의 이해를 구하고 어렸을 때와 같은 관계를 요구하는 아오키는 실망 끝에 홀로서기에 나서게 되면서 영화는 절정으로 달려간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보통 나와 같은 사람들이 쿠죠에게 감정이 동화되고 이입이 되기 보다는 아오키라는 별 볼일 없는 개성의 캐릭터의 변화과정에 더욱 흥미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니라고 하지마라. 우리는 쿠조도 아오키도 아닌 아오키에 가까운 같은 학교 학생일 뿐이다.

    이 영화에서 옥상이 가지는 의미는 그 시작이고 과정이며 결과로 보여지듯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옥상에서 박수를 치는 아이들-거기에는 그들 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쿠죠가 거기서 내려다 본 것들은 무엇이며?
    아오키가 내려다 보고 싶어했던 것은 무었일까?
    쿠죠가 옥상에서 내려와 책상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었이고?
    아오키가 그 옥상에서 13회라는 박수를 치고 싶었던 것은 무었때문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옥상은 그들 청춘의 상징이구나.
    박수치기는 그들만의 분출하기 힘든 욕구를 해소하는 자위행위라는 느낌을 가졌다.

    아오키가 쿠죠와의 펀치 교환 후 벌이게 되는 결말 퍼포먼스(?)는 솔직히 짜릿했다.
    초반 강렬함을 확실히 증폭시켜 결말을 이끌어내는 느낌이다.
    아오키는 나름대로 이해한 것이다.
    쿠조가 그린 책상의 그림을 옥상 바닥에 스프레이로 그림으로서 스스로를 확인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시도하는 거다. 단지 그에게는 시도하는 것 자체가 그의 의미라는 듯이.
    쿠조가 등교하면서 보게 된 검은 학교 건물은 아오키의 세계였으며,
    쿠조가 물러난 세계,
    쫓아가지만 이미 늦었음을.
    나름대로 짐작해본다.
    내가 느낀 영화는 이렇다.
    그들이 찾고자했던 것, 보려고 했던 것들, 보았던 것들이 무언지는 솔직히 모른다.

    다만 그게 청춘이고 푸른 봄이라는 느낌을 가질 뿐.

    꽃은 시들려고 있는것이 아니다. 피려고 있는 것이다.
    "물은 매일 주고 있냐? "

    그래 필요한 것은 피려고 하는 의지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맘에 드는 것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 봐라. 뭐든지.
    꽃이 시든다고 하더라도
    시들려고 꽃이 있는 것은 아니다.
    피게 되어 있다.
    그게 청춘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오는 다음의 사진.

    스토리상 존재하지 않을 이 사진은 나를 즐겁게 한다.
    그래 이들이 정말로 바랬던 것은?

    일어를 거의 못하는 관계로 "행복하면 손뼉을 쳐라"라는 말이 조금 어색하다.
    행복하려면 손뼉을 쳐라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쩝 언어의 미묘함과 국민성의 차이려나?

    근래 보게 된 몇 작품의 일본 영화가 나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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