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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썸타임스 인 에이프릴 Sometimes In April, 2005
    TV 2007. 8. 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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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Raoul Peck

    Idris Elba ... 오거스틴
    Debra Winger ... 프루 Prudence Bushnell

    HBO에서 르완다 대학살을 소재로 만든 TV영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극. 그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고, 인간 자체에 대한 환멸에 스스로가 부끄러워 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느낀다. 르완다의 비극이 94년에 벌어진 것도, 그 대량학살의 규모도, 원인도 전혀 몰랐고 관심밖에 있었다. 르완다에 관해 다룬 영화, Hotel Rwanda가 있었지만 접해볼 수는 없었다. 아니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 비극적 현실을 일으킨 원인을 알고 싶지 않았고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는데 결국은 르완다의 비극에 관한 영화를 보게 되었다.

    르완다의 비극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 학살의 당사자들인 후투족과 투치족만의 종족갈등으로 비롯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느낀다면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자일 것이다. 르완다에서는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했고 구원할 존재조차 없었다. 왜곡되어진 여론과 집단광기, 무관심 속에서 무려 백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서로를 증오하는 가운데 죽어갔다. 이 엄청난 학살로 발전하지 않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학살의 원흉 중 하나로 지목받고 있는 르완다 정부군의 지도자가 한 말 처럼, 그들은 석유도 다이아몬드도 없었기에 마음대로 학살을 자행하고 학살을 당해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들이 풍부한 자원이 있었다면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하여 백만명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숫자의 주검은 훨씬 줄어들었을것이다. 영화에서는 말한다. 그러한 개입이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있느냐고 말하는 미정부관리, 결국은 이익과 권력으로 대변되는 인간들의 이기와 탐욕이 비극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르완다는 그 탐욕의 희생자인 것이다.

    하기야 처음부터 르완다의 인종갈등을 일으킨 것들은 서양침략자 원숭이들었다. 르완다를 식민지배하면서 효율적인 착취를 위해 부족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공포와 증오만을 심어버리고는 무책임하게 발을 빼버린 것이 유럽양아치들이니. 그 피해의 당사자들인 르완다인들은 같은언어 같은 문화를 공유했던 오랜 동반자에서 후투와 투치로 나뉘어져 서로를 여전히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 그 책임은 누가 질 수 있겠는가?

    이런 대량학살의 비극 속에서도 신이 존재한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까?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이건 천벌인가? 천벌이라면 왜 이들이 그것을 감당해야 할까? 그 원흉은 서구유럽인데 말이다. 그래서 르완다에는 신이 존재할 수 없다. 영화속의 신부가 행했던 모습은 신의 존재를 자신에게 편리하게 이용하는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주이공은 매년 사월의 우기가 되면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죽은 자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시달리고 있다. 비록 자신은 그 피해자 중의 하나이고 형제는 가해자가 되어버린 상황. 바로 그것이 르완다의 현실이다.

    미국과 서구열강들은 분명히 그 사태를 줄일 수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모른 척 한다. 마치 자신들이 신인 것 처럼 징벌을 조장하고 있다. 르완다인이 르완다인을 죽인 것이라고 말한다. 결코 아니다. 당시에 집단강간을 당한 생존자는 말한다.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았다고 그 학살의 죄악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말한다. 지시하고 조장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것을 모른 척하고 방관한 모든 이들이 범죄자이며 학살자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대부분은 자칭 민주주의이며 인권을 강조하는 서구세력들의 책임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설사 이 사건을 몰랐다 하더라도 인간이라면 그 책임을 공유할 수 밖에 없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팔레스타인, 중동 에서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모든 비극들은 결국 지구에서 유일하게 멸종을 당해 마땅한 인간이라는 사악한 종이 일으킨 것이다. 종교, 민족, 이익등의 모든 탈을 뒤집어쓴채 행하고 있는 인간들이 점점 싫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빌어먹을 사회와 구조하에서 인간은 그렇게 흡혈귀처럼 생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흡혈귀는 최소한 생존을 위해서 피를 빨지 않는가? 인간은 아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많이 흐른 듯 하지만 영화자체로 돌아가도 마찬가지이다. 그 슬픔과 비극은 저절로 눈물이 흐를 수 밖에 없다.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오거스틴은 투치족 아내를 두고 있는 후투족 군인이며 1남 2녀를 두고 있으며, 투치족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라디온 진행자 동생이 있다. 94년 당시 일어난 내전과 학살로 그는 아내 잔, 두 아들 , 딸 모두를 잃게 된다. 10년이 흐른 후 동생 오레노의 재판을 맞아 그가 회상하는 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픔이고 슬픔이다. 단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비극의 원흉은 인간이지만, 결국 미래를 기약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인간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극을 맞닥뜨리면 저절로 신을 찾을 수 밖에 없겠지만 어디에도 신은 없으며 도와줄 이 또한 없다.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이 비극을 감당해내고 극복해 나가는 것 또한 인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별의미가 없다. 그 속의 현실이 너무나 무겁고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은 지금도 어디선가 진행이 되고 있는데 단지 우리가 그것을 모른 척할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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