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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 A Long Walk Nagai Sanpo
감독: 오쿠다 에이지奥田瑛二
오가타 켄 ... 야스다
스기하라 하나 ... 사치
2006 몬트리올 영화제 대상수상작.
천사와 할아버지의 아주 길었던 산책. 좀 더 따뜻한 가슴을 데워주는 그런 영화를 기대하고 보았는데 소통의 단절과 관계의 불신이 지배하는 비극을 보았다.
야스다와 사치. 전혀 관계가 없는 두 노소가 푸른 하늘을 찾아가는 여정은 슬플 수 밖에 없다. 야스다는 퇴직한 교육자로 아내를 사별하고 딸에게 집을 물려주고 허름한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독불장군에 억압적이었던 야스다에게 평생을 시달린 아내의 죽음과 그것을 지켜보고 살아온 딸은 화합할 수 없는 관계이다.
줄거리는 more
야스다는 이사한 집으로 가던 중 등에 날개를 가진 천사를 보게 된다. 그 천사는 천국에 거하지 않는 쓰레기 더미속에서 무관심과 학대로 시들어가는 현세의 지옥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야스다가 알게 되는 것은 금방이다. 야스다는 천사를 그곳에서 빼내어 무작정 떠나게 된다. 오래전 가족과 함께 마지막으로 여행했던 곳의 푸른 하늘을 보기 위해서. 두 사람의 여행이 계속되면서 사치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사치의 마음도 조금씩 풀어지게 된다. 사치와 야스다는 여행도중 귀국자녀(외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학생)인 와타로를 만나게 된다. 사치는 와타로와 금방 친해지게 된다. 와타로는 귀국자녀로써 아프리카 잠비아의 참혹한 현실을 겪었고 이곳 일본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 또한 소외자의 한사람이다. 와타로는 자살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야스다는 사치의 유괴범으로 몰리고, 게다가 사치의 앞에서 와타로는 권총 자살까지 해버린다.
두사람의 여정이 마무리 되는 산위에서 그들은 푸른 하늘을 보게 되고, 사치는 야스다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자수하러 온 야스다가 사치의 앞에서 미안하다며 울부짖는다.
출소한 야스다가 사치의 환상을 보고 앞으로 걸어가게 된다.
가족의 해체, 방임, 학대, 부적응등등 여러가지 소외와 심지어는 학대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충돌과 이해의 이야기라 생각은 들지만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은 전개이다.
사치는 분명히 학대당하고 명백히 지옥에 사는 천사이다. 그것이 사치의 현실이며 학대당하는 유아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죄가 있을 수가 없다.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여러가지 소외와 부적응의 형태는 사치의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가 자신의 선택이며 의지이다. 그 책임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처럼. 사치를 구원해주는 척 자신을 해방시키는 야스다의 착각은 불쾌하다.
착각이 아니라 순수한 호의라고 치자. 그렇다면 더 나쁜 것 아닌가? 야스다의 행동은 안하니만 못한 것이다. 사치가 마음을 열었던 한 사람은 자살을 하고 한사람은 수감이 되었을 때, 사치가 있을 곳은 지금까지 보다 더한 지옥일런지도 모른다.
확대해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또 영화가 현실의 소외에 따른 비극과 유아학대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가 사치에게 부여한 현실은 희망을 가장한 기만일 뿐이라고 느껴진다. 야스다의 눈물을 보여주는 것은 그 결과까지 이미 알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기적인 야스다의 모습이 반성만으로 용서되어질 수는 없다. 그것은 무책임한 영화도 마찬가지. 사치가 야스다의 출소를 기다리는 듯한 환상 장면은 그래서 싫었다. 이 장면이 말하는 것은 야스다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니까. 차라리 신파조로, 어이 없이, 말도 안되는 걸 알지만 사치가 야스다를 만났다면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야스다의 회개여행인줄 알았던 긴 산책은 사치의 끝없는 비극의 재생산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난 이영화가 싫다. 비극스런 현실의 모습도 알겠고 이보다 더한 '아무도 모른다'같은 영화도 있다. 하지만 현실을 겪어가면서 보여주는 것과 야스다처럼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하고 기만해서는 안된다. 야스다는 구원받았다. 사치는 어디 있나? 지금.
볼만한 영화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감동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경우 두번 보고 싶지는 않은 영화가 되겠다. 벗어날 수도 없는 소외와 절망속의 피어나는 희망을 암시하고 있긴 하지만 비뚤어진 나의 정서로는 그 희망을 순순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사치가 날아오르는 장면과 마지막 엔딩테마곡 'UA[각주:1]의 우산이 없어傘がない"가 듣기 좋았다는 것이다.
긴 산책 예고편.
엔딩씬과 엔딩테마송 UAの「傘がない」
아래의 more가사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자막에서 슬쩍 해온 거라.
번화한 도시에는 자살하는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만가고 아침에 나온 신문의 구석에도 적혀있어.
하지만 나에게 문제는 오늘 내리는 비, 우산이 없어.
가야만 해… 너를 만나러 가야 해… 네가 사는 곳에 가야 해…
비에 젖어가며… 차가운 비가 오늘은 마음속에 스며.
네 일 외에는 생각 할 수 없게 돼. 그건 좋은 일이겠지. 가야만 해 너를 만나러 가야해 너의 집에 가야해
비에 젖으며…
차가운 비가
나의 눈안에 내려.
네 일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돼
그건 좋은 일이겠지…
가야해…
너를 만나러 가야해…
네 마을에 가야해 비에 젖으며…
UA는 작년에 보았던 물의 여인KLoG에서 꽤 인상적이었던 가수겸 배우이다. 솔직히 노래가 연기보다는 훨씬 낫다. 원래 가수니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