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우작 Uzak, Distant 2002
    Cinema/etc. 2007. 7. 29. 23:30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Link
  • IMDB
  • Distant in Rotten Tomatoes?
  • Uzak Wikipedia
  • 감독: 누리 빌제 세일란 Nuri Bilge Ceylan

    마흐뭇 Mahmut: Muzaffer Özdemir
    유스프 Yusuf: Mehmet Emin Toprak

    친구에게 추천을 받고 보게 된 영화인데 선뜻 손이 가질 않아서 이제서야 보게 된 영화. 그 추천을 받은 때가 작년이었으니 꽤 오랫동안 안보고 버티었다. 감상하기가 그렇게 만만치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작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짐작이 안가는 이 터키영화는 영어제목인 Distant를 보고서도 처음엔 갸웃할 수 밖에 없었다. 단어의 뜻 그대로 거리감과 서먹함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영화는 굉장히 굉장히 지루하다. 그러나 중반을 지나면서는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고나 할까? 저절로 몰입이 되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공장이 문을 닫아 고향을 떠나 이스탄불로 온 유수프,
    10년전에 이스탄불에 와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사진작가 마흐뭇.
    두사람이 같이 머물게 된 짧은 동안의 평범한 일상이야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커다란 사건이나 이슈가 없다는 것은 근래의 스릴러와 호러에 익숙해진 내게 있어서 약간은 어색할 수 밖에 없었지만, 반전이나 퍼즐풀기에 골머리 앓을 필요가 없다는 장점과 여유를 선물하는 대신에 극에 몰입하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던질 수 밖에 없었던 인생의 화두는 너무 무거웠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스릴러를 보는 것처럼 영화가 무얼 숨기고 있는가에 궁금해하는 스스로가 우습기도 했었다. 이 영화는 뭘 감추고 놀래키는 영화가 결코 아닌데도 말이다.

    며칠간의 동거기간에 서로에 대한 불만(주로 마흐뭇이 유수프에게 가지는)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마흐뭇이 가지는 불만은 별게 아니다. 아무런 계획없이 빈둥거리는 듯한 모습, 지저분함,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야동을 마음껏 볼수 없다). 유수프는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무책임한 일면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마흐뭇이 나무랬던 몇몇 부분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입장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지만,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로에게 다가가지를 않는다. 솔직하지 못하다. 마흐뭇이 이혼한 후 정기적으로 여자를 사는 모습에서 어떤 관계에 대한 두려움늘 느꼈고 그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도시의 삶에 상처받고 신음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유소프는 어떤 관계를 원하는 듯 보이지만,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한다. 그가 떠나온 퇴락한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 하지만 어떤 희망도 찾지 못한 채 더 나은 상황을 바랄 수 밖에 없는 소극적인 자세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이 두사람의 모습은 다른 듯 같은 우리들의 모든 모습처럼 여겨진다.

    어머니의 간호를 위해서 집을 잠깐 비운 후 돌아온 마흐뭇은 집의 지저분한 상태에 유수프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게 된다.(그러면서도 여자를 사는게 더 웃기긴 하지만) 어쨌던 마흐뭇은 일방적으로 유소프를 비난하고 구박하지만 그 모습은 스스로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머니 시계를 찾지 못한 마흐뭇은 유소프를 의심하고 몰래 가방까지 뒤지게 되고 유수프를 추궁하는데 시계를 찾았으면서도 그것을 몰래 감춘다. 이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한 간사함일테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소통을 거부하는 우리들의 거짓된 모습 그대로이다. 제대로 소통하고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솔직히 드러내야만 하는데 우리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그것을 쉽게 하지 못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편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약간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 마흐뭇이긴 하지만 곧 떠난다는 전처의 전화가 더 신경 쓰인다. 그날 밤 어지간히도 잡히지 않던 쥐새끼가 끈끈이에 걸린다. 접착제에 붙어서 찍찍거리는 쥐의 모습은 두 사람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낮에 보았던 길바닥에 떨어진 물고기 한 마리가 팔딱 대는 모습이 유수프의 모습이라면 쥐새끼의 모습은 마흐뭇의 상태 그대로 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날 이혼한 아내 나잔이 캐나다로 떠나는 모습을 공항에서 몰래 훔쳐보는 마흐뭇의 모습에서 진정한 관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단지 필요에 의한 욕구충족에 충실했던 이의 상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끝내 나잔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마흐뭇의 모습은 유수프가 뒤 쫓던 여인을 훔쳐보는 모습과 닮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항에서 돌아온 마흐뭇은 자신이 비웃던 선원담배만을 남겨둔채로 유소프가 떠난 것을 알게 된다.

    원래 이런 일상 속의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들은 잘 정리가 되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 같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어떤 명제라던지 가치관같은 것을 가지게 된다.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관심이 있는 부분은 있을 것이다. 내가 집착하는, 아니 중요시 여기는 것은 소통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통만이 관계를 성립케 하고 유지시키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관심을 둔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가 그리 사회적이지도 못하고 원만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작이란 영화에서는 내가 느끼는 소통의 의미는 두 사람의 거리감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거리감은 소통의 부재와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 이 빚어내는것이다. 관계의 친밀도를 떠나서, 손을 마주 잡고 있으면서도 공허한 관계. 부정하고 싶어서 거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관계, 가까이 가고 싶지만 다가 갈 수 없는 어떤 거리감, 이러한 모든 것들은 소통하지 않는 인간, 스스로를 감추기만 하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일상 속에서 드러내고 있다. 어떤 이는 세상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고 할 수도 있고,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소통을 거부하고 확실한 거리감을 두겠다는 선언이며 더 나은 가치에 대한 부정이라고 나는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별반 다르지 않은 내 모습을 떠올리면 씁쓸하다.

    영화는 끝내 어떠한 희망을 제시하지도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의 찬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 마흐뭇이 피우는 한 개피의 선원 담배에서 나는 흐뭇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수프와 마흐뭇간의 거리는 그들이 소통한 만큼의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느끼는 것은 개인적인 거리감이 아니다. 바로 사회와 소통치 못하는 개인들이 느낄 수 밖에 없는 소외감일 것이다.

    원체 글을 못 적기도 하지만, 내가 적어놓고도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글이다. ^^. 어쨌던 내가 우작을 보고 느낀 것들을 지금은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다. 마흐뭇은 마지막에 뭘 생각하고 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영화에 나오는 아파트와 자동차등은 실제 감독의 것을 사용하였고, 유수프는 감독의 사촌, 마흐뭇은 친구로 전문배우가 아니라고 한다.
    • 두 남자배우는 2003년 칸느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공동수상했지만 유수프 역의 'Mehmet Emin Torpak'은 후보로 지명된 얼마 후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