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vier Bardem: Brother Lorenzo Natalie Portman: Ines/Alicia
"씨 인사이드"KLoG에서의 Javier bardem의 연기가 아주 인상적인 작품. 나탈리 포트만은 비중이 작긴 하지만 괜찮았다. 후반부의 어쩔 수 없는 어글리한 분장이 보기 싫긴 하지만.
고야가 유명한 화가인 것은 알고 있었기에 아 예술에 관한 영화겠거니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각주:2]
극의 초반부는 어처구니 없는 이단심판을 다루고 있는게 아닌가? 이런 젠장. 이런 주제는 좋아하지 않는데. 로렌조는 촉망받는 교회의 신부로써 명성을 드 높이고 있는 상황. 작금의 종교에 대한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이단심문을 부활시키고, 유대교를 믿는 사람을 포함하여 이단의 징후가 있는 사람을 색출하려 한다. 여기에 걸린 것이 이네스(나탈리 포트만)이다. 단지 술집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고를 당한 그녀는 고문에 의해 자신이 유대교도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네스의 집안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로렌조를 구워 삶으려고 하지만 통하지 않자, 로렌조를 같은식으로 고문하여 허위문서를 만들어냄으로써 고백의 부당함을 증명하지만 망할 교단은 로렌조를 타락한 변절자로 몰아갈 뿐이다. (로렌조는 갇혀 있는 이네스를 정욕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이네스는 여전히 풀려나지 않는다.
고야가 바라보는 시선을 통하여 스페인의 왕정과 프랑스의 점령시기, 다시 왕정으로의 복고등을 쭈욱 그려내고 있다. 고야는 이 굴곡진 세월 속에서도 자신의 그림을 그려가면 끈질기게 버텨내고 있다. 귀가 멀어 아무것도 들을 수 없지만 두 눈이 멀쩡해 세상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해 하면서. 자신이 본 모든 것을 그림으로 남긴다.
로렌조가 도망친지 15년 후, 세월은 나폴레옹의 시대, 스페인의 이단심판을 금지하고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혁명의 기운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로렌조는 프랑스혁명의 기운과 함께 스페인의 실세로 복귀하게 된다. 교단의 재판권을 몰수하고 갇혀 있던 이단죄수들을 풀어 주게 된다.
이제 완전히 망가져 버린 이네스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남은 건 폐허가 된 저택뿐, 고야를 찾아가게 된다. 이네스는 감옥에서 낳은 자신의 딸을 찾으려 하고, 고야는 로렌조를 찾아간다. 로렌조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알게 되고 이네스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린다. 이네스의 아이는 수녀원으로 간 뒤 11살때 가출했음을 알게 된다.
또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고야는 이네스와 꼭 닮은 알리시아를 발견하게 되고, 로렌조를 찾지만 소용이 없다. 창녀인 알리시아를 제정신이 아닌 이네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이유로. 로렌조는 알리시아를 스페인에서 떠나게 하려는 음모를 꾸미던 중, 나폴레옹의 군대가 영국군에게 쫓겨 나게 되는 상황에서.(알리시아는 영국군과 함께 하게 된다. 그 와중에 이네스는 알리시아의 아기를 자신의 아기라고 믿고 아버지인 로렌조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도망치던 로렌조는 붙잡혀 종교재판을 통하여 죽음을 선고 받는다.
그의 사형집행일. 이네스는 아기를 안고 시체가 된 로렌조의 손을 잡은채 마차와 함께 걷는다.
아래의 내용은 나의 편견과 좁은 생각이 마구 뒤엉켜 있는 내용이다.
종교가 더럽고 이념이 더러운 것은 분명히 아님을 안다. 그런데 종교가 꺼려지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감이 강해질 때가 있다. 아마도 그 종교가 편협해짐을 느낄 때, 그 이데올로기가 일방적일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종교의 장점은 그것이 어떤 훌륭한 가치관과 지표로써 사람을 올라르게도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일 것이다. 신의 존재는 믿지 않지만 신의 존재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신을 만들었지만, 신은 인간을 창조하지 못했다라는 말은 내가 생각하는 바를 대변하기도 하는 말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생성되는 것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닐까? 그런데도 종교와 이데올로기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은 그 기본을 잘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것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것 말이다. 인간이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위해 존재해서는 안된다. 인간을 위해서 종교, 이데올로기, 법, 국가, 사회, 제도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쓸데 없는 잡소리가 늘어나고 있는데 영화는 고야가 스페인에 살아가는 민중으로써의 상징처럼 모든 것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눈이 되어서 이네스, 로렌조, 지배자들, 일반인들을 가까이서 생생하게 지켜봐준다.
이네스와 로렌조라는 두 극단적인 삶을 살아간 이들과 거대 종교와 국가에 의해 어떻게 그들이 변해가는지를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와 유려한 연출로 이끌어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로렌조와 이네스의 모습은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 낸 상처일 것이다.
대중정보매체의 의도되어진 문구나 광고카피들은 이렇게 진실을 왜곡하는구나 라는 걸 느꼈다. 이게 어떻게 고야의 전기영화란 말인가? 의도되어진게 아니라면 제대로 확인치 않고 밀로스 포먼이란 이름과 고야란 화가를 결합시켜서 만들어 냈을 뿐인 허접함의 자랑일 것이다. -네이버에 있는 줄거리는 단 한 줄이다.-19세기초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드 고야를 다룬 영화- 차라리 적지를 말던가. 물론 거짓은 아니다. 단지 고야의 일생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는 커다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