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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06 맨 온 더 문 Man On The Moon, 1999
    Cinema/U.S.A 2007. 6. 18.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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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os forman
    jim carrey


    Man on the moon
    7년여 만에 다시 본 영화이다.
    그 당시에도 극장에서 본 것은 아니고, irc를 통하여 캠버전의 저화질을 구했었다.

    앤디 카우프먼이란 코미디언의 삶을 다룬 전기식 영화이다.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확신은 못하지만 얼핏 듣기로 사실이라고 들은 것도 같다.
    그는 독특한 인물이다. 달리 제목이 달에 사는 사람이겠는가?
    기존의 틀에 박힌 정형화 되어진 코미디를 거부하고 그는 창의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는 재미를 추구한다. 그것이 자신만의 재미이던, 타인과의 공유되어진 재미이던 말이다.
    앤디 카우프먼이란 캐릭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재미를 위하여
    토니 크리프턴이란 가상캐릭까지 만들어 내며 자신만의 창의적 재미를 추구한다.
    여성을 비하하여 적으로 만들고, 레슬링계와의 대립 등 그가 하는 것은
    모두가 싫어하지만 재미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극단을 추구한다.
    따라서 그를 싫어하는 극도의 안티는 엄청나게 존재를 한다.
    결국 그의 과도한 재미의 추구는 그에 대한 대중의 거부로 나타나며,
    그는 퇴출되고 만다.
    더더구나 그는 폐암에 걸리게 되고, 모두에게서 거부당한다고 느낀다.
    이제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의 꿈이었던 카네기홀에서의 단독공연을.
    그 공연은 감동적이고 훌륭했으며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다.
    이제 그는 자신이 살기위해서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가 처음 암이라고 했을 때 그 누구도 믿지를 않는다.
    또 다른 이벤트이다. 사람 엿먹이는 골탕먹이기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의 병은 사실이었고, 돌팔이 병원에서 잘못된 치료로
    그는 목숨을 잃고 장례식을 치룬다.
    장례식은 그 답다. 노래 부르고 웃고 울리는
    다시 보게 될 것을 말하며 그는 이별을 한다.

    그러나 1년 후 어느 공연장에서
    토니 크리프턴은 그가 하고 싶어하던 공연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잘 살고 있었다.

    위 내용은 굉장히 줄여진 것이며 흐름만을 기술한 것이다.
    영화에서 앤디카우프먼이란 캐릭은 굉장히 까다롭고 불편하고 짜증나는 스타일이다.
    실제로 마주 대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비우고 채우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것 만으로도 앤디카우프먼이란 사람에 대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먼저 생각이 들어지는 것은
    창의적인 만들기, 즉 예술과 매체에 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코미디는 앤디 카우프만에 있어 예술이요, 창의력의 총집이다.
    하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시청률을 담보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발달된
    형태의 상품중의 하나이다.

    토니와 앤디의 동시 출연 장면 후 샤피로가 이렇게 묻는다.
    단지 둘만을 위한 재미는 방송에서 원하지도 않고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더구나 코미디는 관객을 웃겨야만 하는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장르이다.
    토니에게 중요한 것은 재미이다. 그는 남들이 왜 웃는지를 잘 모른다.
    웃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을 재미있게 해 주는 것을
    끊임없이 찾고 행하는 것이다. 나머지의 평가나 타인과의 공유는 그에게 있어
    전부의 의미는 아니다. 오죽하면 그 자신이 재미있다고
    공연장에서 위대한 개츠비 한권을 다 읽어주겠는가?

    예술적 측면과 산업적 측면은 항상 떼어질 수 없는 관계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두 측면이 다 중요하다. 어느 부분에 집중을 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표현을 해야만 자신의 의지와 논지가 타인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앤디의 짜증날 정도로의 자기추구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짐캐리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영화 이후, 단순한 코미디언이 아니라고 느끼기 시작했었다.
    아마 이 역할을 저렇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짐캐리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00년 초에 본 몇 몇 영화들 중 being john malkovich, girl interrupted등과 함께
    그 당시 좋아했었던 몇몇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 또한 즐겁다.
    아쉬운 건 내가 미국 코메디를 제대로 이해 못한다는 것이 문제일뿐이다.
    앤디가 웃길때 같이 웃어야 하는데, 조금 느리거나 생각중이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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