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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읽어주는 여자 La Lectrice 1986
    Book 2007. 5. 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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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예전에 읽었던 짧은 소설들을 찾아서 읽던 중
    어제 읽었던 '밑줄긋는 남자'와 연계하여서 다시 잡게 되었다.
    EBS 프로그램 중 책읽어주는 여자, 밑줄긋는 남자 라는
    것도 있는 것 같더라.

    이책을 읽었던 1994년의 느낌과는 전혀 관계없이
    (당연한 것이 그 느낌을 기억하지 못한다)
    주절거려 봐야 할 듯하다.

    책 읽어주는 여자라는 왠지 관능적이면서도
    지적인 느낌의 묘한 이 책은 꽤 색다른 느낌을 준다.
    밑줄긋는 남자와도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사회적이며 관계지향적이며
    스토리의 구성에 있어서는 더 영화적이라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오래 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다.
    꽤 매력적인 스토리이며 인지도도 있으니 당연하다 느낀다.
    물론 이 책이 "밑줄긋는 남자" 보다 이전의 작품이긴 하지만,
    그 영향의 관계에 관계없이 콩스탕스라는 비슷한 이름의 주인공
    10년에 가까운 주인공의 나이차는 재미있게 느낄수 밖에 없다.

    마리-콩스탕스 G는 서른 네살의 아이가 없는 유부녀이며,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는 참으로 듣기 좋은 음성을
    가지고 있다. 친구의 조언에 따라 그녀는 책읽어주는 여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다.
    은사인 롤랑소라, 남편인 필립, 그리고 그녀의 고객들.
    장애를 가진 에릭, 발랄한 소녀 클로렝드 , 장군부인, 부유한 사장 미셀.
    그외라고 할 판사, 형사, 의사들과 의 관계는
    거의가 책을 매개로 이루어지며 스토리 또한 그러하다.
    모파상, 졸라, 마르크스, 보들레르, 사드, 클로드 시몽 등의
    텍스트를 수단으로 하고 있지만 느끼기에 그 작품과의
    소통이라기 보다는 책읽어주는 그 행위 자체로 인한
    관계의 형성과 소통을 보여준다.

    성에 눈을 떠 가는 에릭,  마르크스와 그 사상에 심취한 장군부인,
    그녀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미셀, 책보다는 호기심의 세대인 클로렝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남편 필립, 남에게 자신을 투사하길 즐기는 친구 프로랑스,
    그녀의 아버지이며, 은사이며 조언자인 롤랑 소라.
    그리고 그녀를 주시하며 치죄하려는 듯한 판사,의사, 형사.

    그녀는 단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려고
    할뿐이지만 그로 인한 관계들은 그녀를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인물자체라기 보다는
    책을 읽는 이들의 모습이며, 방법이며 형태일 것이다.
    그녀는 중립적인 책읽어주는 여자로 기능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애초 불가능한 것이다.
    아니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 어떤 관념이라던가, 통념에
    부딪힌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책을 읽어주면서 관계를 읽게 되고 사회와 현실을
    읽어가는 즉 아마도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책을 읽어주는 여자이며
    책을 읽는다는 것, 소통을 한다는 것이 아닐까?

    밑줄긋는 남자가 책을 통한 이해와 그에 따른 소통을 다룬다고
    느꼈다면 책 읽어주는 여자는 책을 읽는다 것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단순하게 그러나 심층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단 책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관계들, 사상들, 살아간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은
    이 책에서 표현하는 책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거듭되는 표현이긴 하지만 이 책 또한
    책과 문학, 저작 아니 예술과 삶에 대한 어떤 가치에 대한 헌사라고 느낀다.

    이정도로 줄이고 10여년 전에 내가 책의 끝에 적었던 짤막한 감상을
    덧붙인다.

    1994년 4월 24일 01시 25분
    - 소설의 재미에만 몰입하여 (아마도 영화적 재미인 듯)
    내가 얻으려고 하던 것을 파악하진 못햇다.
    재미있었다. 절묘한 조화를 느꼈다.
    독서는 어떠한 형태이던 개인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독서 그 내적인 것에서의 집착은
    그때의 상황을 너무도 잘 반영하기에
    오히려 책을 왜곡시킨다.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내게 있어 모든 것이 단순한 보조수단임이
    드러난 지금
    이것이 내 최고의 선택이었다!-

    ps- 난 도대체 무었을 느꼈던 걸까. 위의 글을 다시 보면서
    궁금해진다. 이런 관념적이고 감상적이기만 한 표현을
    적은 이유를 기억치 못해 아쉽다. 하지만 지금의 느낌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에 감상이라는 행위 자체의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이 소설에 어떤
    에로틱함에 집중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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