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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리 슈슈의 모든 것,リリイシュシュのすべて,All about lily chou chou 2001
    Cinema/Japan 2007. 3. 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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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07


    リリイシュシュのすべて
    岩井俊二

    이 영화가 이렇게 어둡고 슬픈 영화인줄 모르고 봤다.
    이지메, 왕따, 원조교제, 청소년이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는 줄도 몰랐다.
    그냥 이와이 슌지라는 이름 하나, 위의 어둡기만 한 포스터 한장,
    아오이 유가 나온다는 것 정도만 알고 접했다.
    이 영화를 봄으로써 아마 이와이 슌지의 극영화는 다 본 것 같다.
    tv영화였던 불꽃놀이......는 제외하고 말이다.
    내가 보는 이와이 슌지의 두개의 경향중 이 영화는 피크닉, 언두,
    스왈로우 테일에 가깝다고도 볼수 있지만 또 다르다.
    러브레터, 사월이야기, 하나와 앨리스와는 전혀 다른 것은 분명하다.

    릴리슈슈라는 가수가 있다. 그녀는 에테르를 표현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우리를 대변할 수 있다....등등
    난무하는 인터넷의 메시지들. 그런데 그걸 바로 화면 위에
    뿌려버리다니, 적응이 쉽게 되지를 않는다.
    적응이 될 때 즈음 영화는 끝이 나버린다.
    처음에 자막과 타이핑 소리는 귀에 거슬리고
    굉장히 영화에의 집중을 방해한다.
    이해할 수 없는 정보들이 알수 없는 글로써 막 뿌려지고
    흘러가버린다. 난 이해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생각났다.
    나는 위 작품을 영화보다는 이문열의 소설로서 기억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호시노의 행태와
    주인공?의 모습에서 그러한 기분을 느꼈다.
    이문열의 소설은 이 영화에서 처럼 소년기에 멈추진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들에서 변하지 않는 현재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으며
    조금은 교훈적인 담론을 포함하기도 한다.(완전히 그러하진 않다)

    한때 왕따였던 호시노와 이제는 가학자로서 지배자로서의 변화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굴복하고 마는 주인공의 끌려다닐수 밖에 없는
    피수용자로서의 자기 인식은 비교될 수 밖에 없다.
    츠다(야오이 유)와 쿠노의 대조적인 대처방식은 생명과 연결되어버린다.
    츠다는 원조교제를 강요당하고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적 현실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날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쿠노는 츠다와 똑 같은 피해를 당하지만 오히려 지금까지의 자신을 버려버린다.
    삭발을 통하여 어떤 경고를 하고 있다. 그녀는 아마도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주인공은 릴리슈슈의 콘서트장에서 호시노를 살해해버린다.
    릴리슈슈의 에테르를 스스로 더럽힘으로써
    호시노를 정화하고 자신을 정화시키려고 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릴리슈슈의 음악뿐이다.

    극중 나오는 자막을 대충 본 관계로 그것을 유심히 한번 살펴봐야겠다.
    그렇지 않고서는 마지막 살인의 과정과 결과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고로 이 이상의 글은 무리. 따라서 나중에 첨부하겠다.

    역시 극중의 인터넷 댓글이라고 할까?
    그 지문들은 영화에 있어서 또 다른 다양한 캐릭터를 형성하고 있었다.

    일단 넷상의 글 자체는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필리아와 아오네코(青猫)의 정체부터 시작하자.
    계속 보면서도 조금은 헛갈렸는데
    필리아는 하스미 유이치의 분신이었고,
    아오네코는 호시노였다.
    이 둘은 서로의 정체를 모르지만 릴리슈슈를 통하여
    깊이 교감하고 있다고 느낀다.
    릴리슈슈를 통해서만이 서로의 존재를 느낄수 있고 인정할 수가 있다.

    위에서 살인의 과정과 결과가 명확하지 않다고 표현했는데
    결과라는 표현보다는 이후의 하스미의 행동이 모호하다고 표현하는게 나을 듯 하다.

    지금 다시 보고 적는 것이라 일단 이전에 적었던 위의 글에 덧붙이라기 보다는
    느낌을 다시 적어보련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릴리슈슈와 에테르라는 그들만의 용어를
    이해해야만 한다.

    에테르의 사전적인 의미는 (MS .Bookself 2.0)
    1. 詩 하늘, 창공
    2. 古 하늘을 채우는 정기
    3. 빛, 열기, 전기, 자기를 전해주는 매질로 우주공간에 가득 차 있었다고 여기던 물질이다.
    1. the regions of space beyond the earth's atomosphere : the heaven
    2. the element believed in ancient and medieval civilization to fill all space
    above the sphere of the moon and to compose the stars and planets.

    (Collins Cobuild 5th ed)
    Ether is a colourless liquid that burns easily. It is used in industry and in medicine as an anaesthetic.

    콜린스 코빌드 사전은 별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새로 나온 사전인데 왜 이 모양인지)

    이 영화에서 에테르는 위의 의미도 포함을 하지만 거의 릴리슈슈와 동일시 된다.
    릴리슈슈는 에테르를 각성한 초월적 존재이며 모든 것을 치유하고 보듬어 안는 그들의 신이다.

    그들의 인터넷 투고 글에서 보듯이 에테르의 의미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릴리 슈슈 또한 그들의 주관만이 그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호시노와 하스미, 아오네코와 필리아.츠다와 쿠노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대답은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릴리슈슈로 연결되어져 있다.
    처음엔 아닐지 몰라도 그들은 릴리를 통하고 있다.
    공통분모를 찾았으니 이제는 차이점을 살펴야 할 듯 하다.

    호시노와 하스미
    둘은 친구였다가 지배와 피지배 형태로 관계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둘은 비슷한 소심한 성격이었다.
    하스미는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그의 변화는 오직 두번이다. 살인과 염색)
    호시노는 오키나와 여행계획 때부터 조금씩 변화를 거쳐
    오키나와에서 죽음을 경험며 캐릭터가 완전히 바껴버린다.

    하스미는 소심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우울한 캐릭터이다.
    그것은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

    둘은 릴리슈슈를 통하여 필리아와 아오네코라는 가면을 이용해서만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고 말해줄 수 있다.

    필리아와 아오네코는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느낀다.


    츠다와 쿠노의 캐릭터는 위에서도 말했지만

    같은 처지, 다른 선택, 다른 결말을 이끌어낸다.

    즉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의 슬픔이란 것이다.

    쿠노의 삭발을 본 츠다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고

    연날리기를 통해 날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다.

    그것은 죽음의 다른 표현이다.

    영 정리가 안된다. 젠장.

    모두가 쓸데 없는 소리이다
    .

    이들에게 릴리슈슈는 무엇인가?

    그들이 살아가고 싶은 모든 것이리라.

    그들이 말하는 에테르는 너무나 간절하지만 가질 수 없는

    그러나 이미 가지고 있는 희망이며 휴식과 치유의 촉매일 것이다.


    그들이 갈구하던 에테르는 이미 없어 졌고, 현실에 절망한다.

    단지 들판에서 릴리슈슈를 들을 뿐이다.

    어째 글을 적을 수록 정리가 안되고 있다.

    그건 아마도 필리아와 아오네코가 나누었던 게시판 대화와

    릴리슈슈의 이미지에 벗어 나오지 못한 것 때문인 듯 하다.


    일본에서 중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불합리한 현실에 살아간다는 것....



    이와이 슌지의 "UNDO"와 궤를 같이 하는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관객의 집중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그 방해에 익숙해지면 영화는 끝나버린다.

    화면에서 타자음과 함께 투덜대던 음악과 자막들은 종국에 가서

    Undo의 풀어서 흩어져 있는 줄을 연상시킨다.

    보는 내내 힘들었다. 젠장. 그것도 두번씩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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